[트렌드뷰 10] '고백할 수 없는' 관객 앞에 수줍게 마주 선 최인규 감독

  • 기사입력 2016.03.27 20:52
  • 기자명 소마


슬펐던 기억에 대한 물음에 그는 대답을 못한다. 특별히 그런 감정을 느낄만한 일이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그의 영화는 내면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는 갑자기 슬픈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기억 속에 잠들어 있는 슬픔에 대한 그의 잔상이 이야기로 풀어져 나왔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많은 기억들의 실체일 수도 있고 어쩌면 상상속에 각인된 클로즈업을 들추는 것은 아니었을까?



다소 딱딱한 안경테의 느낌과 이마에 모아져있는 신경 주름의 흔적은 최인규 감독의 고집을 느끼게 한다. 두 번째 만남은 그가 좋아한다는 커피 가게였다. 공장을 개조해서 만들었다는 커피가게는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이미 분위기에 커피향이 느껴진다. 영화 ‘풀몬티’의 등장인물들이 모여 앉아 삶을 도모했을 듯 거칠지만 운치를 가지고 있는 커피가게였다.




재즈 피아노 선율이 실내를 감아 돈다. 커피 쟁반을 들고 자리를 찾다가 그가 선택한 자리는 벽돌이 부서지고 구멍이 뚫린 공간을 가로지르는 벽의 옆자리였다. 테이블이 바닥 높낮이와 딱 맞지 않아 흔들거리며 삐걱거리는 것이 거슬렸지만 그가 찾은 구멍 뚫린 벽의 느낌이 나쁘지 않아 자리에 앉았다.



영화 감독이라는 소개를 받았을 뿐 그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실은 거의 없었다. 그는 아직은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신인 감독이다. 그의 시작을 묻는다.



해외 특파원이 부러웠던 중학생



“어린 시절에 티비를 참 좋아 했어요. 어릴 때 부터 기자 같은 것을 하고 싶었나 봐요. 뉴스 같은 것을 즐겨 봤는데 외국에 가서 특파원 같은 거 하는 모습들이 부럽게 느껴졌고 저런 걸 하려면 무슨 과를 가야 할까 생각을 많이 했어요. 중학교 때 부터 ‘신문 방송학과를 가겠다, 학교에 관계 없이 신문 방송학을 전공하겠다’ 했어요. 그래서 신문방송학을 했죠.”



어린 시절 하고 싶다는 신문방송학을 했지만 그가 하고 싶다는 기자나 특파원은 하지 않았다. 왜 하지 않게 되었냐는 질문에 하지 않은 것도 있고 못한 것도 있다는 말을 한다.



“대학에 입학하고 오리엔테이션에서 선배들하고 술을 마시는데 영화 서클에 있는 선배가 마침 나랑 같은 자리에 앉았던 거예요. 하늘같은 선배가 자기 서클 자랑을 하면서 내일 당장 나오라고 말하는 거예요. 근데 그걸 안 지키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확 들었어요. 또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 하기도 했고요. 처음에는 방송반이나 연극반 이런데 가려고 했는데 영화 서클을 다음날 가게 된 거죠. 술 먹고 약속을 해서 인생이 바뀐 거예요 (웃음).“



영화 서클에서 단편 영화를 만들면서 이거 하면서 평생 살아가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마음처럼 영화 쪽으로 가지 못했다. 영화계의 어려운 현실에 자신을 던질 자신이 없었다. 군대 전역 후 그는 세상으로 나갈 준비를 시작한다. 4학년이 되면서 언론사 시험을 보았다. 그런데 잘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광고 회사에 지원을 했는데 그 곳에 합격 하면서 그의 삶은 안정적인 궤도를 밟아 나가는 듯 했다. 그는 광고 회사에서 3년을 보낸다.





서른, '재미'를 찾아 '안정'을 버리다



안정적인 회사였지만 그는 재미가 없었다. 꽤 유명한 광고 회사였고 아무나 들어 갈 수 없는 회사였지만 그에게는 맞지 않았다.



“누구의 어떤 오더를 받아서 일하는 것을 안 좋아하나 봐요. 전 그게 싫어요. 그 사람이 이야기하는 방식이 마음에 안 들면 수용이 안 돼요. 성격이 안 좋은 거죠.”





광고는 '주종의 관계'라는 말도 덧붙인다. 태생적으로 주종관계에서 일방적 소통을 원하지 않았던 거다. 광고회사를 다니면서 회사 내에 영화서클을 만들었다. 그는 일보다 회사 내 영화서클로 더 유명했다. 그 맞지 않은 회사를 다니면서 영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던 것 같다. 서른에 회사를 그만두고 영화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본격적인 고민을 시작한다. 영화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은 없었다. 그제서야 제대로 공부할 결심을 하고 유학을 선택한다.



음악도 영화도 영국적인 것에 끌리다



“음악을 좋아하는데 예를 들면 콜드플레이(Coldplay)나 라디오헤드(Radiohead)나 오아시스(Oasis) 같은 브릿팝(Brit-Pop)을 좋아했어요. 어렸을 때는 듀란듀란(Duran Duran) 펫샵보이스(Pet Shop Boys) 컬처클럽(Culture Club) 이런 음악을 많이 들었죠. 그래서인지 영국에 대한 선망이 있었어요. ‘아~ 얘네들 독특한데?’ 라는 생각을 했지요. 결정적인 것은 회사를 그만 둘 당시 풀몬티(The Full Monty, 1997)나 브레스트오프(Brassed Off, 1996), 트렌스포팅(Trainspotting, 1996) 같은 영화에 많이 끌렸어요. 헐리우드 영화와는 다른 느낌이었어요.”



런던 대학교의 골드스미스 칼리지(Goldsmiths, University of London)에서 3년을 공부했다. 그곳은 우리나라 문래동 같이 독특한 카페가 있고 공장지대의 느낌과 할렘의 느낌이 살아 있는 곳이다. 그곳의 추억을 떠올릴 때 그의 말투에서 생기가 느껴졌다. 학교 이야기를 하며 지금 인터뷰하고 있는 커피숍의 분위기와 영국의 학교 분위기가 많이 비슷하다는 이야기도 한다.



'죽음과 치유'를 담은 졸업작품



졸업 작품을 고민하던 최인규는 ‘라스트 걸 슬립스'라는 싯구로 제목을 잡아 졸업 작품을 만들었다. 영국에 있을 때 페딩턴역(London Paddington station)에서 열차 사고가 난다. 몇 십명의 사람이 불에 타 죽었다. 그 사고의 사망자 중에 한국인 여자가 있었는데 비극적인 것은 그녀는 영국의 로스쿨을 갓 졸업하고 그날 아침 법률 회사에 첫 출근하는 날이었다. 그 모티브에 옷을 입혔다. 그녀가 열차에서 죽어가던 짧은 시간에 사랑하는 남자에 대한 회상과 그녀를 사랑했던 남자가 그녀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치유해가는 이야기다. 살아 있는 자가 죽은 자를 보내는 방식과 예의 또는 치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졸업 작품 이야기를 듣다 문득 그의 첫 작품은 어땠는지 묻는다. 첫 영화는 26살 무렵 군대를 갔다 와서 만들었던 16미리 단편 영화였다. 처음 만들었던 영화는 서울에 사는 사람들의 '단절'과 '고독'에 대한 영화였다.



“지금 그 필름이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그건 영화도 아니죠 (웃음).”



그는 첫 영화에 대한 회상을 하며 얼굴 가득 부끄러운 웃음을 짓는다. 그의 영화적 언어 속에 깔려 있는 느낌은 밝고 신나는 이야기는 아니다. 왜 단절과 고독과 혼돈에 관심을 갖는지 물었다. 그는 오래 침묵하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는 대답을 한다. 그의 긴 생각 사이에 카페의 재즈 피아노 소리가 그와의 간격을 채우고 있었다.





깊고 생생한 울림을 담고 싶다



“저도 제가 왜 우울한 쪽에 관심을 갖는지 생각해 보았어요. 개인적으로는 재밌게 살려고 하는 사람이에요. 어렸을 때 대단한 고생을 했다거나 그런 건 없었어요. 그런데 왜 그런 것이 끌리는지는 모르겠는데 아주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의 어두운 이면을 이야기 해보고 싶어요.”



영화를 진지하게 좋아하고 부터 영화는 시시껄렁하게 웃고 즐기는 게 아니고 뭔가 깊게 그리고 힘들지만 어떤 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혼자 있는 시간에 많은 것을 얻는다. 요즘 어떤 영화를 보았는지 묻자 그는 최근 본 폴란드 영화를 이야기 하며 줄거리를 설명해 준다. 그는 마지막 장면을 설명하면서 감탄과 탄식을 한다. 아직도 그에게 영화의 장면이 감동으로 남아 있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어제 본 영화는 ‘무스탕'이라는 영화에요. 터키 영화인데 정말 재밌어요. 사실 그런 영화를 보면 부끄러워요. 제가 만든 영화 보다 훨씬 뛰어나 솔직히 작가로서 부끄러워지는거죠.”



달변으로 막힘없이 영화를 설명하는 그는 신이 났다. 언어의 습관이 영화를 설명하는 스토리에 잘 녹아들어 듣는 사람을 빠져들게 했다. 그가 말해 준 영화를 한번 찾아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심리적인 추이가 보여지는 영화들 그리고 영화를 볼 때 '진짜다' 하는 느낌의 영화들 날 것의 느낌 생생한 느낌의 영화들이 제가 재밌어 하는 영화들이에요.”



이번에 최인규 감독의 첫 장편 영화인 ‘고백할 수 없는'도 그런 날 것의 느낌이 많이 살아 있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 정도는 아니다’고 말하며 많이 담아 내지 못했다는 자평을 한다.





무의식에 각인되었던 슬픔의 이미지



인터뷰를 마치려는데 그는 불현듯 슬픔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그가 기억하는 슬픔을 말한다. 아마도 그는 무의식이라고 느낄 만큼 깊은 수면 아래에 넣어 둔 기억이 생각난듯 했다. 그는 기억의 이미지를 더듬더듬 찾아 갔다.



“어렸을 때 미국에서 어학 연수를 한 적이 있어요. 그 때 기숙사에 같이 있던 친구들과 여행으로 에팔레치아 산을 갔어요. 산속을 차를 몰고 올라가는데 미국은 야생동물이 많잖아요. 순록인지 사슴인지가 지나가는데 무엇인가 딱 차에 부딪히는 거예요. 차도 심하게 망가졌고 내려서 보니 그 얘가 쓰러져 있는 거예요. 그 때는 차가 부서졌으니 차부터 걱정을 했어요. 그런데 사슴은 쌍으로 다닌대요. 랜턴으로 주변을 비춰보는데 저쪽에서 사슴 한 마리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서 있는 거예요. 사슴 눈이 정말 크잖아요. 그 큰 눈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는 거예요.”



최인규 감독은 사슴의 눈을 보았던 그 한 컷의 느낌을 잊지 못한다. 자신이 만든 영화 안에 어딘가, 어떤 순간에 그 한 컷이 꼭 있어야 하지 않을까를 고민한다. 그가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바로 그런 감정의 이미지인지도 모른다.



그의 장편 ‘고백할 수 없는’은 진실 찾기에 대한 이야기다. 세 명의 인물들이 사각의 공간 안에서 진실을 찾는다. 진실은 사각 공간 안에 갇혀있다. 그가 전달하고 싶은, 그가 담아낸 한 컷의 잊을 수 없는 이미지를 만나보고 싶다. 그의 영화가 궁금하다.



2016년 3월 31일 광화문 스폰지 하우스에서 그의 영화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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