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번도 도망치지 않았던 청년의 이야기

  • 기사입력 2016.03.11 14:27
  • 기자명 이현파


3·1절 전후로 <동주>와 <귀향>처럼 일제 강점기의 아픔을 다룬 영화들이 주목받고 있다. 역사의 아픔들이 아직도 다 치유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나의 외할아버지는 윤동주 시인의 절친한 친구였던 故 문익환 목사의 제자이시다. 그래서인지 윤동주 시인의 짧고 아름다운 삶을 다룬 이 영화에 더욱 끌렸다.





고전 영화를 보는 듯한 흑백 화면, 영상과 함께 나긋나긋하게 흘러나오는 윤동주의 시들은 이 영화를 더욱 아련한 아픔으로 만든다. 우리는 감상을 표현할 때 흔히 '한편의 시같다'라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이 영화야말로 '시의 영상화'를 이뤄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평소에 시가 어렵다거나 뜬 구름 잡는 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꼭 이 영화를 보길 바란다.





<동주>의 포스터를 보면 알 수 있듯 이 영화의 주인공은 사실 두 명이다. 학창시절부터 우리 곁에 익숙하게 자리한 '별 헤는 밤'과 '서시'의 주인공 윤동주 시인 그리고 그의 친구인 송몽규 열사. 이 영화를 지탱하는 가장 큰 줄기는 세상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각 차이에서 뻗어 나온다.





동주는 시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고 시를 통해 세상과 이야기하려고 했던 사람이었다. 반면 몽규는 신춘문예에서 상을 받을만큼 훌륭한 글솜씨를 갖추고 있었지만 잘못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결국 강경한 투쟁이라고 믿었다. 혁명의 시대에 '문학'은 너무나 순진한 것이라고 절하했다. 그래서 동주와 잠시 멀어졌던 것 아닐까. 감히 누구의 생각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영화에 나왔던 여진이라는 친구가 했던 말처럼 동주가 시를 사랑하는 만큼 몽규는 나라를 사랑했을 뿐이다.





만주땅에서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던 동주와 몽규는 스물아홉살의 나이에 나란히 차가운 형무소 바닥에서 쓸쓸하게 죽어간다. 너무나 젊은 두 사람이 그 속에 있는 가치를 다 펼쳐보지도 못하고 사라졌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가슴아팠던 일은 동주가 말년에 자신의 삶을 몹시 부끄러워하며 살아갔다는 것이다. 일제 고등형사의 심문 속에 동주는 혐의를 인정하라는 서명을 강요받는다. 이 때 동주는 말한다.





'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시를 쓰기를 바라고 시인이 되기를 원했던 게 너무 부끄럽고 앞장서지 못하고 그(몽규)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만 한 게 부끄러워서 서명을 못하겠습니다.'





이 대사와 함께 절규하는 동주의 모습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을 부끄러워해야만 했던 그 시대. 그 때 동주가 느꼈던 자기혐오는 얼마나 깊었을까. 그는 싸우지 못해 부끄러워 했지만 언제나 싸우고 있었다. 그는 몽규의 그림자로 남아 함께 하지 못한 자신을 부끄러워 했지만 언제나 함께 했으며 영원한 시대의 증인으로 남았다. 나는 바쁜 삶 속에서 혹은 공부가 부족해서 잊고 살았던 이 아름다운 이름들을 마음 속에 깊이 아로새기겠다.





이 영화에는 상당히 의미있는 캐스팅이 한 가지 있다. 문익환 목사의 아들인 배우 문성근이 정지용 시인 역할로 출연한 것이다. 정지용 역의 문성근과 동주 역의 강하늘이 만난 이 짧은 장면은 이제 세상을 떠나고 없는 두 사람, 윤동주와 문익환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 같아 묘한 기분을 들게 한다. 우리의 '동주'가 이 영화를 지켜보고 있다면 그가 문성근의 이 대사에 많은 위로를 받았기를 바란다. 그는 단 한번도 문학 뒤로 비겁하게 도망친 적이 없었으니까.





'윤 시인.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움이 아니야.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게지.'





이현파(RealSlow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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