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핫플레이스] 작은 섬에 동네 책방. 시작에 서다

  • 기사입력 2017.07.18 11:40
  • 기자명 트렌드와칭


며칠 전부터 동네 방송 스피커를 통해 안내가 흘러나왔다.



“각 가정에서 기르는 개를 풀어 놓지 말고 묶어 두시기 바랍니다.”



평상시에는 해안가 청소 안내나 해녀들의 소집, 동네 행사 등의 방송이 대부분이었는데 좀 의외의 방송이 귀를 의심케 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또다시 들리는 방송. 이번엔 개들을 묶지 않을 시 포획 조치, 즉 개들을 잡아들이겠다는 내용이었다. 짧고 굵고 단호한 멘트였다.



더럭 겁이 났다. 이제 시골길에서 개들을 볼 수 없게 되는 것일까. 꼭 개들이 없어지는 것이 시골 답지 않은 건 아니지만 시골길을 걷다 마주치는 순진한 얼굴의 개에게 인사를 건넨다던지 한여름밤 개 짖는 소리에 심취한다는 등의 한없이 자연스러운 시골 풍경의 한 부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 아름다운 것, 지켜져야만 하는 것들이 이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내팽개쳐져지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는 사건이었다.



예쁜 꽃들 사이로 작게 엎드린 풀 한 포기라던가 여든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정겨운 손맛과 구수한 노랫가락, 자유롭게 들판을 쏘다니는 개의 모습까지- 참 많은 것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언젠가부터 소외되고 잊혀진 것들, 그러다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것들에 눈길이 갔다.



직장에서도 농부와 농사에 관심을 쏟고 소외된 아름다움을 찾아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했었는데, 이때부터 시골에 큰 관심과 애정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능케한 기폭제는 남편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남편은 자급자족을 꿈꾸며 가치 있는 삶을 지향하는 사람이었고, 나와 뜻을 함께 하는 동지이자 서로에게 든든한 조력자 같은 존재다. 우리는 결혼과 함께 제주의 동쪽 끝섬 우도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눈앞에 펼쳐진 푸릇한 밭,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끝없는 찬란한 바다. 허름한 작은집, 만화잡지의 부록처럼 껴져 있는 조그만 텃밭까지, 우리의 바람을 펼쳐 놓기에 한없이 좋은 토양이었다.



남편과 함께 우도에 오자마자 시작한 일은 집 수리였다. 스스로의 힘으로 집을 고쳐 생활하는 것을 우리 부부의 첫 번째 단추로 삼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동안 어떤 일을 할지에 대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천천히 생각하기로 했다. 오래된 농가주택은 고치는 것보다 새로 짓는 게 낫다는 지인들의 우려를 뒤로한 채 벽지 뜯기부터 전기, 설비, 단열, 가구 제작 까지 전 과정을 조금씩 진행해가며 기어이 완성을 했다. 결코 짧지 않은 공사기간 동안 시멘트 좀 바를 줄 아는 아마추어 손재주를 갖추게 되었고, 동네에 조금씩 스며들어 어느새 우도의 바람을 같이 마주하는 동네 주민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공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갈 즈음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두 번째 단추가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우도에 왔을 때 다른 건 몰라도 공사와 관련된 책을 비롯해 좋아하는 책을 잔뜩 싸가지고 왔고, 왠지 시골에선 더 많이 볼 것 같은 욕심에 읽다만 것까지 챙겨왔는데 두어 달 지났을까 공사를 핑계 삼아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니 어느새 책 대신 스마트폰을 잡고 있는 날이 잦아졌고, 딱히 뭘 하는 것도 아닌데 한번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 잠들 기 전까지 손에서 놓지 못하는 사태에 이르기까지 했다. 결국 ‘내가 뭘 봤더라’ 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글자 한 글자 곱씹으며 느리게 책 한 장을 넘기는 시간보다 몇 백배 빠른 속도로 방대한 정보를 볼 수 있는 스마트한 세상이 있으니 손이 덜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러다간 정말 큰일 나겠다 싶어 남편과 불필요한 스마트폰 사용 금지에 의기투합하여 어떤 책이든 상관없이 늘 곁에 두고 보기로 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는데, 책이 도시나 농촌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이게 두 번째 단추의 신호탄이었고, 우연한 기회에 파도가 철썩이는 바닷가 바로 앞에 공간을 임대했다. 그동안 사유하고 고민했던 것들에 대한 직접적인 실천을 하게 될 공간이 생기게 된 것이다. 장고의 고민 끝에 점점 잊혀가고 삶 속에 꼭 있어야 할 동네 책방을 열어보기로 결정했다.



이 글을 통해 생생한 책방 현장을 전하면 좋았을 테지만, 공사가 한창이라 책방에 대한 바람을 적어보자면..



사라져 가는 것들, 소외된 것들을 부풀리지 않는 소박함으로 다시 보여주고픈 마음을 책방에 담고 싶다. 자연, 생태, 예술 등의 서적과 크리에이티브한 독립출판물을 비롯해 주민과 여행자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우도 문화예술 컨텐츠를 생산해 다양한 커뮤니티가 형성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디자이너 나가오카겐마이의 롱 라이프 디자인 철학을 모티브 삼아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닌 우도의 롱 라이프 디자인을 찾아서 소개하는 일도 꼭 해보고 싶다.



새해가 되면서 대형 출판유통사의 부도 소식이 들려왔다. 소규모 출판사들과 더불어 작은 책방들이 더 힘들어질 거란 생각에 안타까움이 더해지면서 개점도 하기 전인데 불안감이 들기도 하지만, 다시 마음을 다독거린다. 책방이라면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고, 소통하며 나눌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책 한 권이라면 분명 삶의 태도가 바뀔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지난해 무척이나 뜨거웠던 날부터 맹렬한 칼바람이 부는 지금까지 동네 책방 준비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부디 잃어버린 마음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라며..





우도에서 이의선.





글/사진。 이의선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 지금은 제주에서 배를 타야 올 수 있 는 작은 섬 우도에서 그림 그리는 남편과 숲, 파도라는 이름의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조화로운 삶의 가치를 동경 하고 실천하려 애쓰며, 서툴지만 시골에서의 삶을 채워가고 있다. cerealsun@gmail.com



그림。 황영아



미국 LA에 거주하는 작가다.




현재 진행중이지만 우도에 가시는 분들은 한 번 살펴보셔도 좋겠습니다. by 배운철 - 제주도 문화전문잡지 씨위드에서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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