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스터의 밴드에서 대중의 밴드로, 혁오의

  • 기사입력 2015.10.03 12:38
  • 기자명 이현파


힙스터의 밴드에서 대중의 밴드로, 혁오의 <22>





2년마다 찾아오는 연례 행사가 된 '무한도전 가요제'는 올해 역시 막강했다. 어떤 아이돌의 신곡도 여기서 발표되는 신곡들을 당해내지 못할 만큼 이 프로젝트의 파급력은 거대해졌고, 이제 가요계의 절대적인 권력이 되었다고 보아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지드래곤과 태양, 아이유, 윤상, 유희열 등 얼마나 유명한 아티스트들이 섭외되느냐에도 관심이 쏠리지만, 어떤 아티스트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스타'로 떠오르느냐에 대해서도 늘 관심이 집중되었다. 2011년에는 10cm, 2013년에는 장미여관이 발굴되어 대중의 스타로 떠올랐다. 이번에 김태호 PD가 선택한 라이징 스타는 '불량한 나얼'처럼 생긴 오혁과 93년생 동갑내기 친구들로 구성된 밴드 혁오였다. 무도를 통해 처음으로 혁오를 접한 대중들의 반응은 얼추 비슷비슷했다.





'쟤네 누구야? 목소리 좋네'





물론 인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들의 이름이 결코 생소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각종 뮤직 페스티벌에서 앞다투어 혁오가 섭외되어 왔었고, 수많은 전문가와 아티스트들도 입을 모아 이 밴드의 음악을 극찬했다. 몇달전에는 프라이머리(Primary)와 함께 준수한 작업물을 내놓기도 했다. 이런 의미있는 성과들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음악은 어디까지나 한정된 시장 안에서만 소비될 뿐이었다. 몇달전만 해도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는 무명이나 다름없었던 이 이름이 소녀시대,씨스타, 빅뱅, AOA 등 쟁쟁한 메이저 가수들을 밑에 두고 차트 1,2위를 석권하는 사건을 일으켰다. 방송의 힘을 무시할 수 없겠지만 결국 본질적인 것은 음악 그 자체의 힘이었다.





각종 음원 차트 1위에 오른 '와리가리'로 주목받은 EP <22>는 첫번째 EP <20>에서 선보였던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밴드답게 록을 기반으로 하는 가운데 다양한 장르의 작법을 결합하면서 '나른한 그루브'를 연출하고 있다. 차분한 일렉 기타 리프로 시작되더니 16비트의 펑크(Funk) 리듬으로 진행되는 '와리가리'를 먼저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펑크라는 장르 자체가 어디까지나 '춤을 추기 위한' 것에 가장 큰 목적이 있다지만, 혁오는 이 곡에서 신나는 듯 신나지 않는 묘한 펑크를 연출한다. 돌아오지 않는 시절에 대한 서글픔을 감각적으로 노래한 가사('다 쓴 야광별을 떼어냈죠' / '어렸을 때 몰래 훔쳐봤던 아빠의 수첩 같은 일기장엔 오늘의 걱정이 적혀있던 게 생각나네 )를 댄서블한 편곡과 덧붙였다는 부분이 역설적이다.





각각 다른 장르들을 혁오의 '분위기'와 섞는 혁오의 실험은 다른 수록곡들에서도 계속된다. 함께 공연을 하기도 했던 화이티스트 보이 얼라이브(Whittest Boy Alive)를 연상시키는 'Settled Down'에서는 임동건의 베이스 라인이 주도하는 펑키 그루브가 흥겹다. 'Mer'에서는 브릿팝 밴드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22>의 7곡 중에서는 'Hooka'를 베스트 트랙으로 뽑겠다. 호주의 사이키델릭 밴드 '테임 임팔라(Tame Impalah)'를 떠올리게 하는 이 곡은 혁오의 지난 앨범에 수록된 'Feels Like Roller Coster Ride'의 연장선에 있다. 공간감이 꽉 찬 환각적 사운드가 매력적이다. 천재노창이 했던 말처럼 식상할 정도로 남용되고 있는 표현이긴 하지만 '약빨고' 연주하는 듯한 분위기의 연주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가만히 듣고 있자면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타 소리만으로도 이번 앨범의 베스트 트랙으로 뽑기 충분하다. 물론 이들의 음악을 이야기하는 데에 있어서 오혁의 허스키하면서도 섬세한 보컬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연주가 아무리 훌륭하다지만 우리나라 가요팬들의 귀를 가장 먼저 사로잡을 수 있는 것은 보컬의 목소리이다. 오혁의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무한도전>에 혁오가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 유희열과 윤종신은 이들을 '장르를 정의할 수 없는 밴드'라고 설명했다. 많은 언론 인터뷰에서도 드러나지만 멤버들마다 즐겨 듣는 음악의 스타일이 판이하게 다르다. 얼렌드 오여(Erlend Oye)부터 존 프루시안테(John Fursicante), 디 안젤로(D'Angello), 위켄드(The Weekend)까지. 취향의 스펙트럼만큼이나 다양한 범위의 장르들을 빌려왔지만, 각각의 곡들이 혁오만의 분위기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혁오 음악의 요점이다. 아직 다른 아티스트들의 그림자가 많이 느껴지긴 하지만 이제 걸음마를 내딛은 20대 초반의 밴드가 자신들만의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현재 대중음악의 가장 큰 흐름은 장르와 장르 간의 경계가 무의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음악 장르를 정의하라는 질문에 '혁오 음악'으로 정의한 혁오는 이러한 현재의 흐름을 가장 잘 체화시키고 있는 밴드이다. 오혁의 보컬 스타일이 록 보컬보다는 흑인 소울 보컬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도 그런 관점에서 재미있는 부분이다.





혁오는 등장한 이후 '힙스터(Hipster/ 대중의 큰 흐름을 따르지 않고 자신들만의 음악,패션,반문화를 추구하는 젊은이들)의 밴드'로 불리곤 했다. 혁오 음악에는 가요의 전형성을 벗어난 팝적인 세련미가 있다. 분명히 남들과 스스로를 차별화하고 싶어하는 힙스터들의 기호에 안성맞춤이었으리라. 그런 것을 본인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혁오는 자신들을 '힙스터를 움직이는 밴드'로 정의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세련미가 일반 대중까지 만족시키며 힙스터를 움직이는 밴드에서 '대중의 밴드'로 진화했다. 분명 긍정적인 현상이다. 이런 아티스트들이 더욱 많아져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사례에도 불구하고 '좋은 음악은 어떻게든 알려지게 되어 있다!'라는 신화는 허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인지도'와 '대중성'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이름을 알려보지도 못하는 좋은 음악들이 많이 있다. 혁오나 10cm, 국카스텐, 장기하와 얼굴들 같은 아티스트들에겐 매스미디어라는 발판이 있었다. 이들이 매니아, 혹은 힙스터의 밴드에서 대중의 밴드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동력은 이것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인디 아티스트들에게는 이름을 알리는 일조차 몹시 어려운 과업으로 여겨진다. 어느 정도의 추진력만 주어진다면 혁오처럼 '모두의 스타'가 될 수 있는 아티스트들은 씬에 계속 잠재하고 있다고 본다. 솔루션스가 그렇고, 디어 클라우드, 칵스, 글렌체크, 9와 숫자들도 있다. 분명히 혁오처럼 실력있고 참신한 젊은 아티스트들이 많이 있어야 음악계가 풍성해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 대중음악계에 더욱 시급한 것은 그 좋은 아티스트들이 알려질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는 일이다. 음악을 소비하는 대중들의 보다 능동적인 자세 역시 시스템만큼이나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방송이 나오던 음악만 내보내고, 대중이 듣던 음악만 듣는 패턴을 고치지 않는다면 변화는 없다. 혁오만큼 당신의 귀를 풍성하게 해 줄 수 있는 좋은 음악가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현파(RealSlow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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