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항 직후 30분만에 침몰한 바사호의 환생, 스웨덴 바사 박물관

  • 기사입력 2016.01.22 16:20
  • 기자명 소마


아침부터 저녁까지 박물관 하나를 보았다. 루브르에 갔을 때 많은 명화들 속을 돌아다니며 루브르에 온 이유는 명화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프랑스가 얼마나 많은 세계 문화유산을 가지고 왔는지를 확인하는 것만 같았다. 삶의 스토리가 단편적인 루브르는 지치고 힘든 곳이였다.



그런데 테마가 배 하나뿐인 바사 박물관은 보지 못한 것들의 신선함만으로 재미를 느끼게 해 놓지 않았다. 물론 루브르처럼 지칠 만큼 크지 않다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지만 바사의 전시는 디테일과 짜임새가 스웨덴 삶의 이야기와 흐름을 가지고 있다. 박물관 전체가 배를 통한 스웨덴 문화와 예술과 삶의 설명이다.






배는 그들의 자연스러운 삶



핀란드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낸 후 새해를 며칠 앞두고 헬싱키의 항구에서 배를 탔다. 스웨덴에서 핀란드로 직장을 왔던 이들이 새해를 가족과 보내기 위해 배를 타고 스웨덴으로 떠났다. 내가 탄 배는 Silza line 이라는 배다. Silza line은 핀란드와 스웬덴 러시아 등으로 가는 배편이다. 핀란드나 스웨덴이나 배의 문화가 일찍부터 발달한 나라들이다. 15시간의 긴 시간을 배 안의 명품샵 쇼핑과 식당들 그리고 카페와 나이트, 오락실 등을 이용하며 보낼 수 있다. 배는 그 자체가 작은 백화점이다.



객실은 2층 침대로 되어 있고 그 침대는 접어서 벽에 붙여 놓을 수 있다. 비행기 기내처럼 작은 욕실이 있고 공간을 최적으로 사용 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다. 배는 총 12층인데 내가 묵는 객실은 배의 지하 부분(물에 잠겨 있는 부분) 5층에 있었다. 배는 물에 가라 앉아 있는 부분 5층과 배의 중심으로 6층과 7층 그리고 상부에 8층 부터 12충까지 있었다. 내가 머무는 객실은 물속에 잠겨 있는 부분인 셈이다.



배의 시설들을 보면서 우리가 모르는 해양 문화가 느껴진다. 북쪽이라 바다는 꽁꽁 얼어 있다. 내가 탄 배 앞에 쉐빙선이 가면서 바다의 얼음을 깨 준다. 그 뒤를 여객선이 따라가는 것이다. 쉐빙선이 없으면 여객선은 갈 수 없다. 깜깜한 밤에 내가 탄 배 앞에 가는 쉐빙선을 멀리 찾아 보기도 했다. 배는 그들의 자연스러운 삶이다.



















배에 맞춰 건물을 짓다



스웨덴의 바사박물관을 보고 싶었다. 30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화려한 배의 모습들이 궁금했다. 특히나 바사 박물관은 당시 배의 모습을 잘 복원했다고 한다. 박물관의 외형이 배를 연상시키게 지어 졌다. 건져 올린 배를 박물관에 넣기 위해 박물관을 반 쯤 짓고 배를 넣고 나머지 건축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체 배가 얼마나 크고 어떻게 복원을 했길래 건물을 배에 맞춰 지었을까?



예전 극장 일을 할 때 무대 세트의 크기가 언제나 문제였다. 극장 반입구의 크기가 얼마나 크냐가 관건이다. 디자이너들은 디자인을 하면서 극장의 반입구를 체크하는 것이 기본 사항이다. 반입구에 들어 갈 수 있게 세트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사의 배는 조립이 된 상태로 건물 내로 들였다는 것이다. 그 큰 것을 건물로 들여오려면 문이 커야 하는데 그렇게 큰 문을 만들 수는 없다. 그렇게 되면 건물은 붕괴되거나 안정감이 없어질 것이다. 천상 건물의 반을 짓고 배를 넣고 나머지 반을 짓는 방법 밖에는 없을 것 같다.







눈도 많이 오고 추운 날이라 박물관이 보이는 높은 곳에서 전체 사진을 못 찍은 것이 아쉽다. 영하의 날씨에 빨리 따뜻한 곳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박물관 앞에서 겨우 몇 컷을 찍는 것으로 만족했다.



박물관은 총 4층인데 건물의 가운데 건져 올린 바사호가 있고 배를 중심으로 외곽을 돌며 배의 바닥부터 꼭대기까지 6곳의 테마로 4층에 걸쳐 배를 설명해 놓았다. 배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부터 배에서 사용하는 기물들과 연장들 그리고 배의 장식들과 당시의 해군 제독의 초상화와 인근 해협의 지도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캐리비안의 해적'은 영화적 설정만이 아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동남부에 위치한 스웨덴은 막강한 해군력을 필요로 한다. 바다를 끼고 있다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바다로 나갈 수 밖에 없는 현실이 그들 앞에 있었던 것이다. ‘캐리비안의 해적’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배의 모습과 배 안의 삶이 비춰 질 때면 ‘영화적 설정이겠지’ 라는 생각을 했다. 그 옛날 배에 그렇게 많은 시설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들이 들었다.







출항 직후 30분 만에 침몰



바사호는 스웨덴의 바사왕가의 구스타브 2세(Gustav II)가 재위하던 시절 만들어 졌다. 1625년에 건조되어 처녀항해를 1628년 8월 10일에 하게 되는데 바사호는 출항을 하고 30분만에 침몰했다. 환송을 나온 많은 인파와 환호에 답하려고 64개의 포문을 열고 포를 쏘아 올렸다. 포문을 열면서 갑작스런 돌풍과 함께 물이 들이차면서 바사호는 좌현으로 급격히 기울어지며 침몰했다.



바사호는 3개의 돛대와 전장이 230피트나 되고 700여개의 조각들로 화려하게 장식한 함선이다. 탑승 가능 인원 450명, 탑재 가능 대포 수량 64개에 이르는 거대한 배로 제작되었으며 동시에 300kg 이상의 포탄을 발사할 수 있는 강력한 화력을 지니고 있었다. 바사호의 침몰을 전해들은 구스타브 2세는 “대포는 건져 올려서 녹여 쓰고 돛은 쳐서 없애서 나로 하여금 이 배를 잊게 하라” 라고 한다. 구스타브 2세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은 역대에 드믈게 공을 들여 만든 배였다는 소리다.





디테일이 살아 있는 박물관



바사호는 300년 넘게 가라 앉아 있었다. 당시 바사호에는 150명 가량이 타고 있었는데 30~50명 가량이 배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침몰한 바사호는 1956년 해양 고학자인 '안데스 프란첸'에 의해 발견되어 333년 만인 1961년에 인양되었는데 인양된 배에서 25구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1961년 당시 인양을 하던 잠수부들의 복장





이건 전부 미니어처다. 그림이 아니다.

세밀한 부분까지 정교하게 만들어 놓았다. 바사호 제작 과정이다.







바사호를 층별로 표현해 놓은 단면 미니어처다.

주방도 있고 대장간도 있다. 층마다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표현 되어 있다.



당시의 유골을 복원하고 그 유골의 흉상을 제작해 전시해 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당시 사람들의 외모와 의상과 심지어는 그들의 소지품까지 전시해 놓았고 배를 만드는 과정과 배의 단면을 만들어 구조가 어떻게 생겼는지 굳이 설명을 듣지 않고도 직관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당시의 채색이나 장식들에 대한 자료들도 전시를 해 놓았는데 배를 칠했던 도료들과 조각들과 카펫까지 모두 전시했다. 화려한 색채와 조형성이 강조된 부조들이 아름답다.



많은 박물관을 가 보았지만 바사 미니어처의 디텔일은 훌륭했다. 아주 작은 것까지 꼼꼼하게 표현해 놓았고 특히 배에 대한 설명을 여러 관점으로 보여준다. 바사호를 건져 올리는 과정에서 스웨덴의 각계 각층의 학자들이 동원되어 그 시대상을 복원하고 재연하는데 함께 연구했다. 그 설명은 당시의 과학뿐만 아니라 시대상과 문화까지도 풀어 놓았다. 바사라는 배를 보는 것이 아니라 당시 스웨덴의 삶을 본다.







1600년대의 사람들의 모습. 배에서 건져 올린 유골로 만들어 복원했다





바사호를 채색 했던 도료들





바사호의 화려한 조각과 색채



너무 추워서 오래 머물지 못했던 스웨덴. 가장 추웠던 겨울에 나는 거기 있었다. 그들의 삶은 생각보다 소박했고 검소했고 실용적이었다. 주근깨가 많은 금발의 메이드가 가져다 주던 오래씹어야 맛이 좋은 거친 스웨덴 빵이 기억난다. 그들도 넓은 바다와 척박하고 거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 남은 나라다. 그들이 지금 이룩해 놓은 복지와 환경이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그들이 과거를 왜 그토록 복원하고 연구하는지 우리도 한 번쯤 생각해 볼 대목이다.





바사호를 건져 올리던 1961년 당시 스웨덴의 모든 학계 전문가들이 모였다. 바사 박물관 한 층은 바사호를 복원하는 모든 과정을 사진 자료로 만들어 놓았다. 해양 과학자부터 고고학자와 역사학자 해부학자와 문화 인류학자 예술가까지 모든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1600년대 스웨덴 당시의 삶을 연구하고 복원했다. 어떻게 복원했는지 설명까지도 바사는 친절했다.



박물관 하나를 보는데 하루를 온전히 쏟아 부었다. 다 돌아보고서도 아쉬운 마음에 놓친 것은 없는지 박물관을 나가지 못하고 다시 처음부터 돌았다. 바사 박물관을 돌면서 한 벽에 그려진 인어 그림을 보면서 선원들을 홀려 바다로 빠지게 한다는 인어(프:sirène 발음은 시렌)이야기가 생각난다. 인어가 바다에서 소리를 내며 노래를 부른다는 어원에서 불어의 시렌이 지금의 ‘싸이렌’이 되었다. 나는 마치 시렌에 홀린 듯이 바사를 돌았다. 충분히 바사는 홀릴 만큼 근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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