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에 의한, 프레임을 위한, 프레임의 정치와 마케팅

  • 기사입력 2015.10.30 00:36
  • 최종수정 2023.05.22 02:14
  • 기자명 트렌드와칭


정치적 이슈가 나올 때마다 많은 분들이 조지 레이코프의 “프레임론”을 얘기한다. 정치 관련 논평에서도 이 프레임론은 꽤 자주 등장한다.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이론이다. 레이코프가 프레임론을 대중적으로 설명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부제가 "미국 진보세력은 왜 (맨날) 선거에서 패하는가"였다. 역시 맨날 지기만 하는 우리나라 진보세력에게는 마치 복음서와도 같은 책이었다. 그의 프레임 이론은 정치 홍보 전략의 프레임을 바꾸어 놓았다.





"상대방의 이슈에 끌려가지 마라"



원래 언어심리학의 이론인 프레임론(조지 레이코프는 언어심리학자다)을 간단히 설명하기는 힘들다. 특히 미국의 상황과 우리나라의 상황이 워낙 달라서 그의 이론을 바탕으로 실제적인 전략을 구체화시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레이코프를 인용하면서 야권과 진보진영에 대해 이래야 된다, 저러면 안 된다“고 나름대로의 충고와 조언을 이어갔지만, ”맞아, 이런 게 딱 떨어지는 프레임이지“라고 평가할 만한 대안은 그리 많지 않았다.



레이코프가 제기한 프레임과 관련된 여러 가지 방법론 중에서 내가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상대방의 이슈에 끌려가지 마라."



그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상대방이 뭐라고 그러든 내 할 얘기만 한다." 또 하나는 "상대방이 말려들지 않을 수 없는 이슈를 제기한다.“



상대방이 제기한 이슈에 그게 맞니 틀리니, 옳으니 그르니를 따지고 그 공방이 주거니 받거니를 계속하게 되면 이미 그들의 프레임에 들어가 버리게 된다. 그러면 그 프레임을 제기한 쪽이 이기는 것이다. 어떤 내용의 공방이 오고 가든, 이슈를 제기한 쪽이 그 공방에서 참패하지 않는 한 싸움이 벌어지는 동안은 그 이슈 자체에 관심이 쏠리게 된다. 싸움의 양상의 어떻게 되든 상대방이 던진 주제의 범주 안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숨겨놓은 땅



노무현 대통령의 후보 시절, 김문수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노무현에게 숨겨놓은 땅이 있다"면서 지도와 등기부등본을 흔들어 보이며 기자회견을 했다. 보통은 그 주장이 왜 말도 안 되는 것인지 구구하게 설명을 하며 반박을 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노무현 후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냥 한 마디로 깔아버렸다. “김문수 의원한테 그 땅 찾아서 가지라고 하세요.” 그 땅이 왜 내 땅일 수 없는지를 설명하다 보면 밑도 끝도 없이 끌려가게 된다. 한나라당이 의도했던 "은닉 재산" 프레임, "알고보니 부자" 프레임에 딸려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노무현 후보의 행정수도 공약



노무현 후보의 행정수도 공약은 휘발성이 큰 공약이었다. 한나라당은 처음에는 어리벙벙하다가 조갑제씨가 서울 공동화론, 서울 집값 폭락론을 제시하자 곧바로 그 이슈로 빨려 들어왔다. 위기감을 부추기는 것은 한나라당의 특기다. 노냥 서울, 수도권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행정수도 이전 = 서울 폭망" 소리만 반복했다. 초반에 잠시 여론이 출렁거렸고 당황한 민주당도 허겁지겁 그게 아니라고 해명해댔지만, 어차피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벌어진 싸움이었다.



정치적 공방이 무슨 운동 경기처럼 깔끔하게 승패가 날 리는 없는 것이고, 유권자들은 누구를 지지하건 간에 날이면 날마다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노무현의 대표 공약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노무현의 프레임에 한나라당이 걸려든 것이다.





울트라 프레임, 종북 프레임



그런데 정말 벗어나기 어려운 프레임이 있다. 바로 종북 프레임이다. 이것은 프레임론의 원조격인 레이코프로서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초강력 수퍼 울트라 프레임이다. 종북의 올가미를 씌우는 순간, “너는 떠들어라, 나는 내 갈 길 간다”며 오불관언 할 수도 없고, 반증을 들이대며 “이래도 내가 종북이야?”라고 아무리 외쳐도 아무 소용이 없는 진퇴양난에 빠지게 된다.



종북몰이의 사례야 수두룩뻑뻑이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난 대선 때의 NLL 논쟁이다. 불법이건 뭐건 대화록을 들고 공격하는데야 그냥 내 몰라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게 왜 그 말이냐”라고 반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진본 대화록을 꼼꼼히 살펴볼 여유가 없다. 진실 공방이 계속될수록 꼼짝없이 새누리당이 쳐놓은 프레임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 종북프레임을 회피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그냥 한 수 접고 들어가는 것이다. 종북 매니아들은 틈만 나면 야권 정치인들에게 천안함에 대한 신앙고백을 강요한다. 천하의 유시민도 경기도지사 선거 때 “정부가 그렇다니 믿긴 믿겠다” 수준으로 물러났다. 문재인은 당 대표가 된 뒤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천안함 폭침”이라고 자기가 나서서 의미 규정을 해버렸다. 이에 대해 숱한 비난이 쏟아졌지만, 나는 무한 반복될 가능성이 농후한 하나의 프레임을 미리 제거한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교과서 국정화 vs. 친일, 독재 미화 프레임



이번 교과서 파동에서도 역시 온갖 프레임이 난무하고 있다. 여권에서 처음 들이댄 프레임은 예의 종북 프레임이었다. 야권은 이에 대해 종북 프레임에 대한 반박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곧바로 “친일, 독재 미화” 프레임으로 맞섰다. 왜 종북 교과서가 아닌지에 대해서는 심용환 선생님 같은 분이 맡아서 미주알 고주알 해명하고, 야당 차원에서는 다른 이슈를 들고 나오는 것이 현명했다. 이 싸움의 승패가 어떻게 되든 노무현 이후 야권에서 프레임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첫 번째 사례가 되지 않을까 싶다.



친일, 독재 소리만 들으면 갑자기 낯이 얇아지는 여당은 곧바로 박정희 비밀 독립군설, 김무성 아버지 애국자설을 들고 나왔고, 그 순간 교과서 전쟁은 '친일 프레임'에 갇혀 버렸다. 그들이 아무리 종북을 다시 들고 나와도 이미 이 싸움은 '친일 프레임'에 고착되고 말았다.



이번 싸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초강력 수퍼 울트라 프레임이라도 시도 때도 없이 써먹으면 언젠가는 약발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역사 교과서에 종북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무리였다는 평가도 있을 수 있지만, 이보다 더 아무 관계없는 일에도 종북 프레임으로 재미를 본 그들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교과서 전쟁"의 프레임 안에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냥 수수방관할 수는 없으되, 교과서를 벗어나 국민들을 매혹할 수 있는 독자적인 이슈를 계속 만들어나가는 것이, 레이코프의 '프레임론'에 진정으로 부합하는 전략이다.





마케팅에서 프레임이란?



마케팅에서도 프레임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고객이나 판매자나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1차적인 프레임은 가격, 품질, 기능 등이다. 그러나 이 프레임 안에서의 대화는 서로 참 피곤한 일이다. 이때 프레임을 전환해야 한다.



가장 고전적인 프레임 전환은 “살까 말까” 프레임에서 “뭘 사지?” 프레임으로 바꾸는 것이다. 명동 화장품 매장의 직원은 언제나 하나의 제품에 대해서만 설명하지 않는다. 약간 설명을 한 뒤에 “이것도 한 번 써보세요” 신공이 들어간다. 그 순간 물건 하나를 들고 “이걸 살까 말까” 고민하던 고객은 “이걸 살까, 저걸 살까” 프레임으로 바뀌어 버린다. 결국은 하나는 산다.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한 제품만 길게 설명하는 것보다, 관련 제품을 1번부터 10번까지 번호를 붙여 한 페이지 몰아넣거나, 이 구성 저 구성 만들어서 세트로 제시하는 것이 훨씬 쉽게 팔린다.





마케팅 프레임 사례들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아파트에 온갖 화려한 이름을 붙인 것도 대단한 프레임 전환이다. 유한 킴벌리의 “화이트”는 그저 칙칙하고 입에 올리기조차 힘들었던 프레임을 “깨끗하고 순수한” 프레임으로 돌려버렸다. 저 유명한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카피는 옷장에서부터 화장대, 소파에 이르기까지 일관 생산체계를 갖추어야 승산이 있었던 가구업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침대 전문업체의 시도였다. 삼성전자는 가전시장의 프레임을 품질에서 A/S로 바꾸어버렸다.



소셜 마케팅의 성공 요인은 “싼 가격”만이 아니었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안 사면 못 살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었다. “싼 가격” 프레임에 “아무 때나 안 팔아요” 프레임을 덧씌워놓은 것이다. 이 위기감 때문에 안 사도 되는 물건을 미련 없이 사놓고는 쓰지도 않으면서 그저 흐뭇해하는 고객들이 줄을 이었다.





나만의 프레임을 만들어야



마케팅이나 정치나 프레임이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쳐놓은 프레임에 내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 프레임에 상대방이 들어오도록 하는 것이다. 포지셔닝이나 차별화나 결국은 프레임의 문제다. “싼 가격”의 프레임만 들고 들어서는 고객에게 “아무나 못 사는”, “센스가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선택하는”, “남친 혹은 여친이 환장하는”, 하다못해 “포장이 예쁜”과 같은 비본질적인 것이라도 “나만의 프레임”을 만들어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요즘 이슈만 나오면 많은 분들이 조지 레이코프의 프레임론을 얘기한다.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이론이다. 레이코프가 프레임론을 대중적으로 설명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부제가 "미국 진보세력은 왜 (맨날) ...


Posted by 고일석 on Wednesday, October 28, 2015





고일석 대표는 기자 출신이며 <고일석의 마케팅 글쓰기>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평소 다양한 글을 올려주시는데 조지 레이코프의 프레임론에 대한 글이 있어 소개해 드립니다. 정치나 마케팅에서 벌어지는 프레임론에 대해 잠깐이나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by 배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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