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혁명을 꿈꾸는 도시, 프라하 여행 후기

  • 기사입력 2016.01.12 15:10
  • 기자명 소마


암스테르담 공항에 내리니 비가 오고 있다. 새벽 4시 45분. 2시간을 기다려 항공기를 갈아탔다. 처음 받은 보딩 패스의 게이트 넘버와 전광판에 적힌 갈아타는 게이트 넘버가 달라서 잠시 생각을 하다가 비행기 넘버를 믿기로 하고 바뀐 게이트로 이동 했다. 유난히 오늘 따라 동양인이 없는 공항 라운지에서 이리저리 시선을 굴려가며 서로의 관습이 달라 감정을 읽어 낼 수 없는 타인의 얼굴들을 쳐다본다.






비가 오는 낯선 공항에서



뒷자리 아주머니가 머리가 아프신지 계속 내 의자에 이마를 부딪혀 온다. 감기 때문에 잠을 설치고 있는데 뾰족해진다. 잠을 자려고 이리저리 뒤척이지만 불편한 잠자리는 쉽게 잠들게 해 주지 않았다. 목이 조금만 꺾여도 목안에 강아지 털이 들어 있는 듯 간지러워서 기침을 해댄다. 뒷자리 아주머니가 신경에 거슬리지만 내 기침소리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겠다는 생각이 들자 온 얼굴에 미소천사가 되어



"죄송하지만 제 의자에 그만 부딪혀 주셨으면 해요. 의자가 울려요."

아줌마는 내 미소에 알았다는 눈 언어로 말한다. 기내식은 반절도 못 먹고 과일과 요거트만 조금 떠먹었다. 블랙티를 달라고 하자 외국인 스튜어디스는 끌고 있던 캐리어를 놔두고 블랙티를 가지러 간다. 항공기가 높이 올라가면서 기온이 뚝 떨어진다. 담요 두개를 덮고도 춥다. 핫팩을 원한다고 말하자 실리콘 자루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사용하는 핫팩을 가져다주었다.







프라하 역사의 중심 바츨라프 광장에서



한국에서 예약해 놓은 프라하의 숙소는 오래된 건물로 석까래 같은 나무 구조물을 비스듬이 공간을 받히듯 대어 놓았고 침대 머리맡에 창문이 나 있다. 운치 있는 건물의 느낌과 고즈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짐을 풀고 숙소를 어슬렁거리며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꾸진(부엌)을 찾아보고 차 한잔을 마시고 봄임에도 모든 계절이 다 있는 것 같은 프라하의 긴 하루를 시작했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생각난다. 영화 ‘프라하의 봄’으로 다시 탄생 되었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줄리엣 비노쉬와 다니엘 데이-루이스가 나왔던 영화로 ‘프라하의 봄’의 장면들이 머릿속에 오버랩 된다. ‘프라하의 봄’ 이라는 말은 1968년 프라하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민주화 운동의 이름이다. 그러나 ‘프라하의 봄’은 체코의 변화가 동유럽 국가에 미칠 영향을 걱정한 소련의 침공으로 실패하고 만다. 후에 1989년 11월 벨벳혁명(무혈혁명)으로 체코의 공산정권은 막을 내린다. 프라하의 봄에 민주화를 원하던 군중들이 모여들었던 곳이 ‘바츨라프 광장’이다.



이 광장은 중세에는 말 시장 이었지만 후에 사형을 집행하는 곳이 되기도 하였고 체코슬로바키아의 독립선언과 2차 대전의 종결도 선언했던 곳이다. 그리고 프라하의 봄과 벨벳혁명까지 바츨라프 광장은 체코의 수난의 역사와 함께 호흡했던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바츨라프 광장의 남쪽에 국립중앙 박물관이 바츨라프 기마상 뒤에 자리 잡고 있고 광장의 이름이 바츨라프가 된 유래가 기마상 때문이기도 하다. 바츨라프 왕자는 지덕을 겸비한 통치자였으나 동생에게 살해당하고 후에 체코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받게 된다. 바츨라프 광장에는 생각 보다 많은 사진을 찍지 못했다. 공사 중인 곳이 너무 많기도 했고 기마상 뒤에 있던 조각상의 엄지발가락이 부러져 있는 것이 웃기기만 했다.





‘이 아이는 문화재가 아닌가 보네~’





이 광장을 수 없이 왔다 갔다 했다.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나오면 걸어서 이곳을 통과해서 가고 싶은 곳을 정하곤 했다. 바츨라프에 오면 먹을 것과 중앙 우체국과 은행과 서점과 미술관, 쇼핑거리가 모여있어 이 광장의 작은 골목들만 다 뒤져도 하루가 짧았다. 해가 지고 다시 바츨라프 광장을 걸으며 프라하의 밤을 보았다. 여기도 한국의 밤처럼 젊음이 뜨거운 청춘들의 밤이다.





천문 시계탑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면 곤란하다



광장을 지나 구시가지로 접어들면 구시가의 또 다른 광장이 나온다. 이 광장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면 과히 건축 양식의 전시장 같다. 고딕 양식부터 르네상스와 바로크, 로코코 양식들이 광장을 가운데 두고 빙 둘러 있다. 너무나 많은 양식이 한 곳에 모여 있으니 현기증이 난다. 구시가의 최고의 명소는 바로 천문 시계 탑이다. 이 시계를 만든 장인이 똑 같은 시계를 만들지 못하도록 장님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정오면 천문 시계의 움직임을 보려고 많은 사람이 모여 들었고 프라하에 머무는 날이 많았던 나는 그 시계 앞에 거의 매일 가다시피 했으나 막상 시계의 움직임을 보며 실망하기도 했다.



뮌헨의 춤추는 인형 시계 보다 스케일이 크지 않은 것에 실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계의 조형성에는 박수를 보냈다. 12사도의 정교한 움직임과 암탉이 나온다. 사람이 너무 많아 사진을 찍는 것 자체도 버거웠지만 시계를 보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내게는 큰 재미였다. 아마도 이 시계탑 앞의 까페테리아의 커피 값이 가장 비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헤어지거든 천문 시계탑 앞에서 만나’ 이 따위의 약속은 절대로 하면 안 될 것 같다. 인파 속에 상대를 찾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사람에 지쳐가고 종일토록 걷기만 했던 하루는 어딘가 가서 앉아야 한다는 생각을 간절하게 했다. 무엇보다도 화장실에 가고 싶다. 주변의 카페들을 살펴보았지만 첫 날부터 거하게 비싼 자리 값을 내고 커피를 마시고 싶지는 않다. 시계탑에서 옆으로 빠지는 길가에 고풍스런 건물의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고 고유 로고 대신 건물과 어울리는 모습을 한 스타벅스가 보였다. 우리나라 인사동에 들어선 스타벅스가 인사동에 들어서는 조건으로 받아 들였다는 한글 스타벅스 간판이 생각 난다.



'스타벅스는 여기에서도 이렇게 마케팅을 하는구나' 이곳은 프라하의 문화 특구 같은 곳이니까! 화장실을 가고 싶은 마음에 스타벅스에 들어서니 다행히도 화장실은 유료가 아니다. 스타벅스의 커피 값을 보니 우리나라 가격 보다 천 원 가량이 싸다. '스타벅스! 우리 한테만 비싸게 받는 거였어!' 결국 한국에서도 잘 가지 않던 스타벅스를 유럽까지 와서 가장 미국적인 카페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는 해프닝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지나친 정교함에 피곤함을 느꼈던 카렐교



프라하 하면 가장 유명한 것이 카렐교다. 카렐교는 프라하의 다리 중 가장 오래 되었으며 다리라고는 하지만 이 다리의 조각들을 보면 르브르나 바티칸에 전시되어 있어야 할 것들이다. 다리에 성인들의 모습을 조각 해 놓았는데 예수도 있고 마리아도 있다. 성인의 모습에는 그 나름의 이야기들이 있고 전설이 있다. 하나하나 의미를 찾아보면 더욱 재미있는 곳이다. 무엇보다 조각상의 정교함이 남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다리 위 조각에 이토록 정성을 들였다니. 르네상스의 미술이 익숙하고 편안한 나로서는 카렐교의 지나치게 세밀한 조각들이 조금은 피곤했다. 옷의 주름 하나하나와 표정의 리얼함 까지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는 조각들은 지나치게 구체적이다.



카렐교의 조각들에 눈이 팔려 다리를 몇 번을 다시 넘었는지 모르겠다. 실증이 날만큼 들여다보아도 사실에 가깝게 구체적인 것은 기억의 덩어리에 많이 남지 못 했다. 카렐교의 다리는 그 생김의 모습처럼 쁘띠(작다라는 프랑스어) 예술가들의 작은 예술품과 공연을 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이 이 다리위에 서 있었다.















모든 계절을 느낄 수 있는 도시라더니



봄이기는 했지만 날씨는 도대체 어느 계절에 와 있는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도시에 처음 내려섰을 때는 공기의 촉촉함으로 비가 오는가 했다. 그리고 해가 나고 햇살은 따뜻했다. 갑자기 눈이 내렸다. 예상치 못한 눈으로 기대하지 않았던 장관을 보게 되기도 했다. 프라하 왕궁으로 올라가던 언덕길에 보았던 오래된 도시의 풍광은 그 무엇보다 근사했다.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의 동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했다.



프라하 성 근처에서 먹었던 늦은 점심은 다소 바가지를 쓴 것을 알았지만 눈 오는 거리로 내몰린 이방인에게 쉴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했다. 배가 고팠던지 닭고기로 만든 요리는 맛이 있었다. 후식 값을 따로 지불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커피를 거절 했지만 커피 한잔이 간절한 오후였다.











예술이 없는 평범한 빈 공간은 없다



성 미쿨라제 성당은 바로크 양식의 전형을 보여준다. 내부로 들어가면 디테일의 극치의 조각상들이 성당 안을 가득 매우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큰 돔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눈이 피곤할 정도로 많은 조각들이 어지러웠다. 어느 한군데 편안하게 시선을 놓아 둘 곳이 없이 빼곡 했다. 사진을 찍는 것을 포기해 버렸다. 모두를 찍을 수 없을뿐더러 결국 무엇도 기억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차르트가 연주 했었다는 오르간을 눈으로만 보고 사람인지 조각인지 모르는 빽빽한 숲에서 벗어나고 싶어진다. 숨 쉴 수 없이 가득 찬 무수히 많은 천사와 성인들의 만들어 진 시선이 부담스럽다. 빨리 숙소에 돌아가 눕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 졌다.







숙소로 돌아오던 길에 카렐교를 먼 발치에서 보며 잔잔하게 흐르는 블타바 강가의 오리들의 한가로움에 마음을 내려놓았다. 종일 만났던 많은 이국인들의 얼굴을 이렇다하게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며 너무 많은 볼거리에 눈은 지쳐가고 있었다.







프라하는 가난한 예술가의 스케치북



돌아오던 길에 거리에서 그림을 그려 파는 아저씨를 만났다. 그는 몇 년째 그 자리에서 그림을 그려 생계를 유지 한다. 사진을 찍어도 좋은지 묻자 그는 'No problem'이라고 한다. 그의 그림을 한참 쳐다보다 내가 들고 있던 아이 패드의 그림을 보여 주자 그는 내 그림을 퍽 재미있어 했다. 그를 향해 떠뜸한 영어로 내일 다시 지나가면 인사를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다시 긴 걸음을 옮긴다.







프라하는 충분히 영감이 있는 도시다. 예술적 생략에 인색한 프라하의 모습은 그 나름의 틀을 가지고 있다. 그 틀이 다변적이라는 것이 이 도시의 매력일 것이다. 지나치게 매력적인 연인이 두려운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나의 현기증은 아마도 그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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