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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원더걸스'의 시작

이현파
- 7분 걸림








'팀 원더걸스'의 시작



이 앨범을 기점으로 단순한 아이돌에서 탈피했다





얼마 전, 한 생방송 음악 프로그램에서 원더걸스와 빅뱅이 1위 후보로 맞붙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두 팀이 한창 'Tell Me'와 '거짓말'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8년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라서 감회가 새로웠다.(내가 중학생 시절 일이다.) 날이 갈수록 명성이 높아져가고 있는 빅뱅과 달리, 원더걸스는 지난 몇년간 과거의 이름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야심차게 시작한 미국 진출은 실패로 끝났다. 미국 진출 이후 원더걸스가 발표한 곡들은 예전만한 힘을 내지 못했고, 잦은 멤버 교체마저 겪으며 팀의 중심은 흔들렸다.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걸그룹들의 홍수 속에서 원더걸스는 그렇게 과거의 이름이 되는 듯 했다. 그런데 3년만에 발표되는 새 앨범 의 티져 영상 속에서 그녀들의 손에는 뜬금없이 기타와 드럼,베이스가 쥐어져 있었다. 뚜껑을 열고 나니, 굳이 밴드의 형태를 취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분명히 공감이 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다른 것을 모두 제쳐놓고, 가 이뤄낸 음악적 성취라면 '밴드 코스프레'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레트로(복고풍) 콘셉트를 통해 성공을 이끌었던 원더걸스는 이번 앨범에서도 '레트로' 기조를 유지한다. 타이틀곡 'I Feel You'부터 전형적인 1980년대식 신스 사운드가 귀에 먼저 들어온다 . 앨범의 문을 여는 'Baby Don't Play'의 드럼 사운드와 키보드, 리듬 기타는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전성기 시절 혹은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앨범을 연상시킨다. 팔로알토의 묵직한 랩이 적절한 포인트가 되어주는 'Candle' 역시 뉴웨이브적인 사운드를 담고 있다. 이렇게 초반의 몇곡만 들어도 이 앨범의 레트로 컨셉은 너무나 뚜렷하다. 'Tell Me' 때도, 'Nobody' 때도 그녀들의 정체성은 레트로였다. 하지만 그 콘셉트가 어느 때보다 뚜렷하다는 점이 이전의 다른 앨범들과 차별화시킨다. 기존 아이돌 댄스곡의 클리셰를 따르지 않고 그보다는 오히려 장르 고유의 문법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앨범이 발매되기 전 이번 앨범은 프로듀서 박진영과 솔로 앨범을 통해 의미있는 음악적 성취를 이뤄냈던 '핫펠트' 예은의 재능에 상당히 기댈 것이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에서 예은을 포함한 4명의 멤버들은 고르게 작사,작곡,편곡에 참여하며 음악적 주도권을 확보하고 있다. 멤버들의 음악적 비중이 그 어떤 한명 중심으로도 쏠리지 않았다. 영원한 프로듀서 박진영이 'I Feel You'를 제외한 모든 수록곡의 작업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부분 역시 흥미롭다. 멤버들이 작업한 곡들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곡은 단연 유빈이 작곡한 'John Doe'라고 할 수 있겠다. 80년대에 짧은 전성기를 누렸던 밴드 리사 리사 앤 컬트 잼(Lisa Lisa & Cult Jam)을 연상시키는 펑키한 편곡 위에 매력적인 멜로디와 브라스 섹션이 조화롭게 놓인 이 곡은, 예상을 깨는 재치있는 구성으로 귀를 즐겁게 한다. 공동 작곡에 나선 Frants 등 조력자의 힘도 컸겠지만, 이런 훌륭한 곡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일이다. 아이돌에 대한 편견이 있다면 꼭 들어볼 것을 추천할만한 곡이다.





이번 앨범의 가장 큰 발견 중 하나로 '유빈과 혜림의 재발견' 역시 뽑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앨범에서 두 사람은 라임과 리듬감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기존의 '박진영식 랩'에서 탈피했다. 물론 두 사람이 아직 프로 랩퍼로서의 경쟁력이 있는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앨범에서만큼은 나름의 노력과 재치를 엿볼 수 있는 랩들을 보여준다. 특히 원더걸스의 오랜 공백과 하락세를 비웃던 'Hater'들을 겨냥한 '고인 됐다 말해 절이라도 해 우린 거인 됐지 밟힘 어쩔래'('Back' 중)라는 대목은 이 앨범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는 확실한 음악적 콘셉트와 연구, 클리셰를 따르지 않는 구성, 그리고 풍성한 사운드 등 긍정적 요소들을 많이 갖추었다. 최근 나온 아이돌 앨범들 중에서 이 정도의 음악적 성취를 이룬 작품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가 다른 걸그룹들의 앨범과 차별화되는 부분은 바로 이 앨범이 유기적인 흐름을 갖춘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걸스데이나 씨스타, AOA 등 기존의 걸그룹들에게 개별적으로 좋은 싱글들은 있었지만, 좋은 앨범은 없었다. 앨범이 작품이 아닌 단순한 곡 모음집으로 느껴졌고,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느껴졌다. 훌륭한 완성도를 가진 걸그룹 앨범이라면 에프엑스(f(x))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에프엑스 특유의 힙스터스러운 매력은 어디까지나 켄지(Kenzie)), 히치하이커 등 실력있는 작곡가들에 의해 전적으로 주도된 것이었다. 그래서 음악팬들은 에프엑스의 음악을 칭찬하면서도 이 것을 과연 '에프엑스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Reboot>는 그런 딜레마를 마주해야 했던 음악팬들을 만족시켜 줄만한 작품이다.





원더걸스가 1위를 하느냐 못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녀들이 하나의 '작품'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가수 이승환의 발언처럼 '음악이 거대 이동통신사의 하위 카테고리처럼 여겨지는 시대' 속에서, 앨범의 의미는 하루가 다르게 축소되어 가고 있다. 한 장의 정규 앨범을 공들여서 만드는 것이 어리석은 짓으로 받아들여지는 지금 시장에서 거대 기획사의 아이돌이 이런 앨범을 발표했다는 사실은 몹시 의미있다. 돌고 돌아서 데뷔 8년 만이다. '팀' 원더걸스의 새로운 2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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